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레올로고스 내전 (문단 편집) === 1342년 === 1342년 7월, 스코플례 부근의 프리슈티나에서 스테판 두샨과 만난 칸타쿠지노스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두샨의 말에 안심했다. 두샨은 제국의 내분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칸타쿠지노스를 보호해주겠다고 나섰고 선의의 표시로 칸타쿠지노스가 디디모티쿰으로 돌아가는 길에 용병 부대를 붙여줬다.그러나 중도에 세레스에서 가로막히자 포위 공격했으나 전염병이 돌아 정예병 1,500명이 몇 주 만에 죽는 바람에 세르비아로 도망쳤다. 그는 세르비아에서 지지 세력을 규합했고, 크리스마스 직전 우무르가 파견한 함대가 에게해를 거쳐 마리차 강 어귀까지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했다. 또한 1342년부터 1343년 사이의 겨울에 테살리아 속주가 칸타쿠지노스의 지지를 선언했고, 1343년 봄에는 마케도니아의 여러 중요한 도시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